임란 전적지를 구두 밑창으로 훑은지 벌써 석달하고도 스무날이나 지났다.
이 죽일놈의 게으름증.
휘발되지 않고 남은 몇몇 기억의 편린을 적는다.
-6월 8일 저녁, KTX 편으로 부산역 도착
-전철로 부산진성으로 이동
-부산진성, 조선 후기에 이축한 성세만 남아, 임란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중간에 일본인들의 손을 타 분해-재조립되었다고 함
-정발 장군을 모신 정공단 도착. 그러나 저녁 무렵에 닿은 탓에, 입장 불가
-전철로 동래역으로 이동. 첫날 일정을 마치고, 소문난 국수집(임금님 국수)에서
국수 한 그릇 말아먹다. 모텔에서 홀로 잠을 청함
-6월 9일 아침 느즈막히 숙소에서 나섬. 동래성으로 도보 이동.
-동래성 또한 조선 후기에 증축되어, 임란 때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
북문 정도가 화마의 위협을 비껴갔다고 함. 개축된 건물은, 원칙없이
진행된 개보수 작업이 얼마나 개수작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기와 지붕 여기저기 흉하게 드러난, 게다가 쩍하니 금이 간
콘크리트 구조는 대체 뭐란 말인가. 사진으로 담아놓았으니, 다시 살펴볼 것.
-송상현 공(戰死易假道難)을 모신 송공단 방문. 천주교식 합장을 올리다.
-시외 버스 터미널을 거쳐 울산으로
-울산 터미널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서생포 왜성으로 이동. 서생포 왜성은
일본 침략군의 1군단장 '가토 기요마사'가 직접 쌓아올린 전투형 왜성으로,
조/명 연합군이 가토 일당을 말려죽일 절호의 기회를 얻었던 곳. 결국
공성은 실패하고, 가토는 '살아서'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죽는다.)
조선 땅을 밟았던 9개 군단장 중, 임란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자가 없다.
조선의 쓸만한 장수란 장수는 모조리 죽임을 당했는데 말이다.
-천수각 등 목조 건물들은 흔적 조차 없지만 성터와 외곽 구조는
지어진 당시 모습대로 남아있더라. 관리인 아저씨 말씀이,
최근에는 일본 지방 의원들까지 찾아와 참배를 하고 갔다고 한다.
-그 말씀을 전할 때, 아저씨는 성벽에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계셨다.
갑작스런 뇨의가 찾아왔지만, 참았다.-
-간절곶으로 이동. 희망 등대에서 수진과 부모님께 한통씩 엽서를 쓰다.
(그런데 수진껀 도착하지 않았다. 한사람에 한 통이라더니, 걸러진 모양)
-꽤나 출출해져오길래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곰. 바로 아침/점심을 건넜던 것.
간절곶 회센터에 들어가 광어 한마리 잡아, 회쳐 먹다. 나름 로망 운운하며
백세주 한병을 보탰는데, 혼자 술마시기 쉽지 않다. 반병 정도 마시고, 나머지 반병은 남기다.
-울산으로 이동, 학동 울산왜성터 옆구리에 위치한 모텔에 들다.
-6월 10일, 아침과 정오 사이 어디쯤에서 깨어남. 서둘러 울산 왜성으로 향하다.
-울산 왜성은 훼손이 심한 편이었다. 이젠 '학성 공원'이라 부르는 편이 더 온당할듯.
-소문난 맛집이라는 '삼산 밀면'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들다.명불허전이라더니
정말 맛있다. 나중에 수진과 한번 더 오리라 다짐.
-시외 버스를 타고 서울로.
사진도 솔찮이 찍긴 했다만,
언제 포스트하게 될지 기약이 없다.
총 경비, 대략 24만원에 2박 3일간 식사 세끼.
창자는 비우고 가슴은 채우고,
6월 11일,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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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08 [여행] 부산-울산 임란 전적기 답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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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맛집이라는 '삼산 밀면'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들다.명불허전이라더니
정말 맛있다. 나중에 수진과 한번 더 오리라 다짐.